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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독립애니메이션으로 살아남기!

by KOCCA 2013. 8. 23.

정연주 (애니메이션 감독)

  

 

가끔씩 어느 기관에서 유망직종에 대한 메일이 날라 올 때가 있다. 하루는 그 메일에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에 대한 직업이 소개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이의 얼굴이 보였다. 참 신기하고 재밌어 꼼꼼히 읽어봤던 기억이 있다. 내가 내 직업을 소개하는 글을 읽는데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다니. 그러면서 속으로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저 친구는 저런 일들을 하는 구나. 그런 생각에 미치자 헛웃음이 났었다. 나는 무엇을 했던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요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애니메이션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망직종 리스트에 올라가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왜 유망한지 궁금한 일이었지만, 콘텐츠가 대세인 지금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논리와는 다른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앞으로 어떻게 유망해질까를 궁리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유망해 질 수 있을까? 독립애니메이션으로 살아남을 수는 있는 것일까?


국내 창작애니메이션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굴곡진 세월을 보냈다. 좀 더 진일보한 다른 방식의 창작이 이루어 질 수도 있었으나 기득권이 주도하는 변화는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90년대 미술운동을 하던 이들이 새로운 모색으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어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독립 애니메이션을 일궈냈다. 머리 없는 거인이라 불리던 하청위주의 한국애니메이션에 독립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애니메이션에는 다시 창작의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은 누구에 의해서 멈춰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 <마리 이야기>


개개인의 열정과 바람으로 90년대를 보내고 그 성과는 2000년도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가장 큰 성과로 이성감 감독을 꼽을 수 있다. 1999년 <덤불속의 재>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본선진출하게 되면서 이를 발판으로 상업적인 자본을 끌어들여 2002년 장편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를 만들게 되고 다시 한 번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부문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이를 개기로 독립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장편진출의 꿈을 키우게 되고 그 꿈은 많은 현재진행형을 낳고 완성형을 만들어냈다. 또한 독립애니메이션의 이런 성과는 하청을 하던 뛰어난 애니메이터들에게도 창작의 불을 지펴 창작애니메이션으로 뛰어들게 했다. 독립애니메이션과 상업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독립애니메이션의 출발은 독립 그 자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니메이션이라는 제작환경은 자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배고픔은 홍수환과 임순례를 만들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을 포기하게도 만들었다. 인력의 이탈을 막고 안정적인 제작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했는데 바로 정부지원기관이었다. 정부기관의 지원에 의해서 시스템 밖에 존재하던 독립애니메이션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제작편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 후반에 생겨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단편애니메이션제작지원은 소금과도 같은 존재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 이관돼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독립애니메이션관련 지원제도 또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지원제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 설은 접어두기로 하자.


▲ <별별 이야기>

 

2000년도에는 조력자까지 등장해 당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인권위원회주관의 공공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 시리즈는 잘된 기획으로 꼽을 수 있다. ‘차별’을 주제로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동시에 기획 됐는데, 단편을 묶어 옴니버스 장편으로 만들어 극장개봉을 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제작을 염두 해 둔 프로젝트였다. 단편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으로 관객과 만나고 공공기관에 DVD로 배포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게 한 이 프로젝트는 단편시장의 확장과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콘텐츠진흥원에서 한시적으로 제작 지원 했던 애니메이션제작스튜디오가 있다. 중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으로 포맷이 애매할 수 있는 지원이었는데 결과물을 만들어낸 감독 세 명이 모여 옴니버스 장편, <셀마의 단백질 커피>로 극장개봉을 기획해 성과를 만들어 낸 경우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세 감독은 독립단편애니메이션에서 중편애니메이션으로 그리고 장편애니메이션 제작과 스튜디오 창업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독립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원제도도 중요하지만 작업자들의 기획력과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많은 시도와 좌절이 있었고 성과들이 생기면서 독립애니메이션은 자리를 잡아 나갔다. 70여개의 애니메이션관련학과와 지원제도로 매해 단편애니메이션이 만들어 지고 그 작품들은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하는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은 작품은 국내외에서 상을 타고 운이 좋은 감독은 취직이 되거나 작가 또는 감독, 창업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염두 해 둬야 할 것은 창작의 길을 가는 경우라면 투잡, 쓰리잡, 멀티잡을 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르게 살아볼 필요가 있다.

 

다르게 살기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자신을 바꾸는 일인 것처럼, 기획단계에서부터 다른 접근과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점을 활용한다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원제도에 의한 제작환경에는 한계가 있고 지금 절실히 필요한 건 시장의 다양성과 확대다. 나의 제안은 다른 분야와의 결합이다.

 

▲ <셀마의 단백질 커피>


그 첫 번째는 앞에서도 언급한 옴니버스다. 각개전투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중단편들을 모아 옴니버스 형식으로 잘 조합해 낼 수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시장을 뚫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생각에 앞서 기획에서부터는 재밌는 아이디어로 짜임새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여 작품을 제작한다면 독립애니메이션 환경자체가 활발하게 변모할 거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같은 주제로 여러 감독이 참여하는 릴레이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오고 있는 데 이런 움직임은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옴니버스 작품집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간의 결합인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은 독립단편애니메이션에게는 높기만 했던 극장개봉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문턱을 낮추는 결과를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극장개봉은 작업자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배급, 상영이 맞물려야만 하는데 여기에 또 어려움이 있다. 독립영화상영관 인디스페이스의 패관은 그 어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두 번째는 출판시장과의 결합이다. 어려운 출판시장에 뛰어드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기획에서부터 출판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 있는 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아니다. 먼저 만들어 인정받은 단편애니메이션을 출판사 쪽에서 먼저 손 내밀어 동화책으로 출판한 경우도 있고 <하얀 물개>처럼 TV시리즈와 동화책 기획을 함께한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소소한 성과들이 있고 누구나 다 아는 <구름빵> 같은 경우도 있다.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 작품을 동시에 소설로 각색해 출판했다. 이에 앞서 영화 <미인도>가 시나리오를 장편소설로 개작해 출판을 처음 시도했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는 있었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만든 경우는 <미인도>가 처음이다. 이런 시도는 이제 활발하게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독립애니메이션의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은 감이 잘 안 잡히는 스마트폰과의 결합이다. 아이폰이 출시되고 앱이라는 미지의 세상이 생기면서 나눴던 이야기인데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앱에서 개최하는 건 어떨 까였다. 전 세계 관객들이 동시에 스마트폰을 켜고 관람하는 것! 꿈같은 이야기였다. 스마트폰과의 결합은 ‘?’로 남겨두겠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정체되지 말고 역량이 되는 한 다양한 방면으로 모색 하고 뻗어나가는 길만이 살길이라 생각한다. 무한도전으로 문을 두드리고 열어젖히길 바란다. 그럼 10년 뒤에도 난 어느 기관에서 보내는 유망직종 리스트를 받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애니메이션이 유망직종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