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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by KOCCA 2012. 4. 23.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천 학 주 (레코딩엔지니어, 밴드 스테레오베이 멤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Cassett Tape과 Vinyl(흔히 우리나라에서는 LP라고 통칭하는)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음반 시대를 지나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CD를 중심으로 다양한 디지털 매체가 등장 하면서 음반 업계와 미디어 업계는 디지털을 통한 여러 실험들을 시도하였다. 디지털은 생산 단가와 제작 공정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써 음반 업계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디지털 포맷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 했지만 90년대를 지나며 ‘음반'에 담기는 내용물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선택 사항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대세가 되어버렸다.

CD의 기본 포맷인 PCM(Pulse Code Modulation)방식은 아날로그 음성 정보를 손실 없이 디지털로 변환할 수 있는, 이론적으로 거의 완벽한 기술이지만 그만큼 큰 용량 때문에 디스크의 크기를 많이 줄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후 디지털 음반 매체는 음향적 손실을 최소화 하면서 가능한 한 데이터의 크기를 작게 줄이는 쪽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90년대 초 MD(Mini Disc)의 등장과 함께 SONY에서 개발한 음성 압축방식인 ATRAC(Adaptive TRansform Acoustic Coding)은 뛰어난 압축률과 음질의 보존성으로 주목 받았다. ATRAC은 CD 직경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의 디스크에 기존의 CD보다 더 긴 시간의 음성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SONY가 1992년에 출시한 최초의 MD 플레이어 ‘MZ1’>

 

 

 

하지만 음반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매체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인지, 9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유행했던 작은 크기의 MD는 결국 일본을 제외한 시장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2000년대 초 이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후 물리적 매체에 종속되지 않은 하나의 음악 파일로써의 ATRAC 포맷은 지속적으로 성능의 업그레이드를 이루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인 보안 정책(자사의 플레이어에서만 재생 가능)으로 인해 모든 것을 열어 놓은 MP3가 급속도로 대중화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대량 생산에서 비(非) 생산으로

동영상을 위한 디지털 포맷인 MPEG에서 음성의 압축 기술만 따로 떼어낸 형태의 MP3는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음악 파일의 대중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MP3는 기술적인 부분들이 대부분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은 손쉽게 자신의 CD에서 MP3형태의 파일을 추출할 수 있었고, 원하는 곳 어디서든 재생할 수 있었다. 물론 MP3는 앞서 언급한 ATRAC에 비해 용량 대비 음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대중들은 그 편리함 덕분에 MP3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저장장치의 기본 용량 증가와 통신 기술의 발달은 Flac, Ogg 등의 저손실 고용량 파일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들이 이미 대중화가 완료되어 버린 MP3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중들은 MP3도 파일의 크기를 조금만 키우면 CD 못지 않은 음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결국 그들은 넉넉해진 저장 공간에 새로운 형태의 파일을 담는 것 보다는 그저 익숙한 MP3 파일을 더 많이 담는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음반 업계는 CD와 같은 물리적 형태의 음반은 물론 웹사이트를 통해 MP3 파일 또한 정식으로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MP3는 등장 이후 꾸준히 불법 복제, 저작권 등과 관련된 크고 작은 잡음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대중과 업계 모두에게 CD 이후의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계속해서 진행된 기술 발전의 흐름 속에서 통신 기술은 ‘용량’, ‘압축’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무시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단 몇 초의 시간을 들이는 것 만으로 CD 음질에 가까운 MP3 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국내외의 대형 음원 사이트는 대부분이 다운로드 뿐만 아니라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이제는 굳이 파일을 다운로드 받지 않아도 온라인에 접속된 상태에서는 고음질의 음악을 어떤 환경에서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음반 업계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결국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의 개발과 보급에 매진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음반 산업은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생산을 하지 않고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형태로 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MP3 이후 음반 산업은 온라인 스트리밍을 주력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그 것을 이용하는 대상은 ‘사람'이라는 점 이다.

 

 

디지털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국제적 음원 사이트인 eMusic이 리서치 기관 Insight Strategy Group을 통해 2011년 12월, 영국과 미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매우 흥미로운 점들을 제시하고 있다.1)
조사의 응답자 68%가 음악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자신이 콘트롤 할 수 없는 서비스로 인식한다'고 응답 했으며 무려 93%가 ‘음반 또는 음원을 소유했을 때 심리적 안도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64%가 ‘음반 또는 음원을 구매하기 전에 새로운 음악을 미리 들어보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는 스트리밍이 음악 감상을 위한 새로운 흐름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엔 힘들다는 증거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CD의 등장 과정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물리적 형태가 아닌 파일 형태인 MP3는 그 것 보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반 산업의 대세가 된다는 것은 위 조사의 결과처럼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도 부딪히는 부분이 있기에 대중이 구입하는 음반의 형태가 Vinyl에서 CD로, CD에서 MP3파일로 옮겨가는 것 과는 조금 다른 문제임을 의미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스트리밍이 아니라면 MP3이후의 음반 형태는 과연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음반 업계와 소비자들은 디지털의 등장 이후 버려졌던 아날로그의

상징인 Vinyl이 MP3의 다음이 될 수도 있다는 증거들을 내 놓고 있는데, 영국의 The Economist Magazine의 기사에 따르면

2011년의 미국 내 Vinyl 음반 판매량이 2010년 대비 39%나 증가했고, 유럽에서의 Vinyl 음반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2)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실제로 내 손에 넣고 싶다.’는 소비자의 소유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스트리밍의 최대 약점이다. 반면 커다랗고 묵직한 Vinyl 음반은 완벽하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매체인 셈인데, 게다가 ‘아날로그’라는 가치는 대중들에게 ‘진짜'를 소유했다는 만족감을 주기에도 충분하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매우 작은 크기의 대중음악 시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Vinyl 음반의 부활 조짐이 보여지고 있다.
아무리 CD가 대세라고 하여도 꾸준하게 Vinyl 형태의 음반이 발매되어 온 외국과는 달리,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Vinyl 음반이라 하면 단순히 기성세대들의 향수에 기대어 옛날 음반을 해외 공장을 통해 재발매 하는 기획이 주를 이뤘을 뿐이었다. 하지만 2011년 초 부터는 한창 인기를 얻으며 활동하고 있는 국내의 음악가들이 Vinyl 음반을 발매했거나 발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데, Vinyl 음반을 제작하는 공장도 하나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죽어버린 국내의 Vinyl 음반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장기하와 얼굴들, 브라운 아이드 소울 등은 이미 작년에 Vinyl 포맷의 음반을 발매했고, 얼마 전엔 2AM이 새 앨범을 Vinyl 포맷으로도 발매할 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많은 메이저 음반사와 음악가들이 Vinyl 로 음반을 발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이를 고려 중 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쉽게 변하고 돌고 도는 것은 유행이다. 하지만 어떠한 현상이 긴 시간을 지속된다면 그것은 흐름이다.
아날로그 매체만이 존재하던 음반 업계에 CD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흐름 가운데 등장했던 MD는 소수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디지털 매체가 등장한 지 30여 년이 훌쩍 지난 2012년에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아날로그 음반들은 과연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잠깐 동안의 유행을 마치고 이내 사라져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