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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책을 빌려(읽어)드립니다.

by KOCCA 2013. 3. 18.


정진 (컨텐츠 기획자, 위즈덤하우스 미디어전략실 대리)

  

  

  <카모메 식당>으로 널리 알려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최근작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엔 이상하리만큼 고양이 속을 잘 아는 외로운 처자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가 나온다. 그녀의 일상은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신주를 보살피고 올해도 어김없이 꼭 결혼하자는 표어를 눈에 띄게 써 놓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하루의 일과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외로운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고양이를 빌리는데 필요조건은 자신이 사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워도 좋은 지 함께 살 고양이에게 합격점(?)을 받고 한 장의 계약서를 작성하면 그 뿐이다. 대여료는 고작 백엔. 대여가 허락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그걸로 되겠냐며 되려 사요코의 생계를 걱정한다.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다독여줄 고양이를 빌리는 대가치곤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이기도 하거니와 그런 고마운 마음을 인색한 값으로 치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문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빌려간 사람들은 저마다 상실의 흔적을 간직한 이들이다. 하나 뿐인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던 노모는 자식처럼 키우던 고양이를 떠나보냈던 애틋함을 빌려온 고양이에게서 위로 받고 딸을 사랑하던 기러기아빠는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타지생활에 동반자를 만난 것처럼 고양이를 얼싸안고 기뻐한다.

 

흔히들 사람은 외로운 존재라고 말한다. 홀로 왔다 홀로 가는 인생이려니 하면서도 때로는 겁을 상실할 만큼 무기력해지며 자신의 나약한 존재감 앞에 한탄이 늘어만 간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살아왔는지… 커피 한 잔, 영화 한 편, 한강을 함께 걸어줄 친구 한명 없다. 회사에는… 누가 있을까? 제기랄, 계약직…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윤태호 작가의 최신작 [미생 5]에 나오는 주인공 장그레의 독백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갈 곳 없는 외로움을 달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그도 아니라면 자신에게 유익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그럴듯하게 익숙한 행위는 바로 독서이다. 언제부턴가 책 읽기는 당장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막간 취미생활이 되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직장인 한 해 평균 독서량은 15.3권(교보문고 독서경영연구소 설문)이고 월 평균 도서구입비로 3만7천600원을 쓴다고 한다. 매일 밥을 먹고 마시는 커피 값을 4천원으로만 잡아도 한 달이면 8만원이니 커피 값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커피 값만도 못 쓰고 있는 책값은 자연스레 낮은 독서량으로 연결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머리 아픈 책 읽기보다 클릭 한 번의 여유와 안락함을 제공하는 티타임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책들로 골머릴 앓고 있는 출판사의 절치부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팟 유저들의 매개체인 팟캐스트로 발현되었다. 국내 팟캐스트의 독식과도 같았던 나꼼수의 인기를 반영하듯 독서량을 갉아먹던 뉴미디어를 활용해 책을 읽게 만들겠다는 것. 

 

 

신호탄은 영화평론가이자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으로부터 시작됐다. 책 읽어주는 남자의 유쾌한 수다로 지난 해 5월 첫 선을 보인 이후 매회 업데이트 마다 높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누적 다운로드 수 353만)중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양념 같은 에피소드가 풍성해 일반 라디오 방송과 견주어 손색이 없는 컨텐츠를 자랑한다. 재 청취율이 높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음악을 듣고 사연을 나누던 라디오가 어느새 책을 읽어주고 교감을 느끼게 하는 소셜미디어로 분업화되면서 개인의 독서 영역은 ‘좋아요’ 버튼을 꾹 눌러 주듯 참여와 소통의 장으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인다. 
"너 이 책 읽어봤어? 빨책에서 들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 혼자만 읽던 책은 ‘보이는 라디오’처럼 점차 ‘들리는 책’으로 읽지 않는 청춘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자음과모음의 <북끄북끄>, 김두식 교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책다방> 등 출판사들의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된 책들은 방송 이후 판매가 급증하거나 독자들의 문의가 활발한 만큼 전통적인 언론 매체나 온라인 서점 외에 마땅한 입소문 활로를 찾지 못한 출판사들의 기대주가 될 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스마트한 일상을 꿈꾸며 날로 진보되는 스마트한 기기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할 일을 수동적으로 다운받는 외로운 존재들이 되었다. 어릴 적 학급문고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했다. 어떤 책들은 다른 친구가 빌려가 버려서 기다리다 지쳐 사 모으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고픈 책 한 귀퉁이에는 평소에 하지 못한 고마움의 글귀를 담아 마음을 나눴다.

 

아날로그 감성마저 퇴색되고 만 지금은 누군가가 추천해주지 않으면 밥 먹으러 가는 일도 책 한 권, 영화 한 편 보기가 쉽지 않다. 순간순간이 선택의 기로인 일상에 내 의지로 결정하고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일이 더딘 이유는 왜일까? 

 

 

"소로우는 호숫가에 혼자 살면서 집 곁에 있는 물새나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은 것처럼 자신도 전혀 외롭지 않다고 했다. 어차피 태양도 혼자고 하느님도 혼자라고." 김선미 저자가 쓴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에 나오는 글귀다. 태양도 혼자이고 하느님도 혼자라면 제 몫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 역시 혼자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책을 읽고 낭독의 즐거움을 알며, 스마트한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자신만의 정공법으로 오롯이 제 갈 길을 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타인에게 고양이를 빌려주고 구멍 난 마음을 메워주었던 사요코처럼 외로움은 빌려서 갚을 수 있는 것도, 공유할 수도 없는 자아의 거울이다. 결국 세상과 맞서 살아나가야 할 주인공은 나이고 외로움을 느낄 겨를 없이 달려왔다면,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마다 불쑥 고개를 내민 외로움과 데이트를 즐길 차례다. 데이트가 끝나고 나서도 사무치듯 외로움이 깊어질 땐 친구에게 고양이(혹은 강아지)를 빌리거나 책을 빌려 읽거나(사서 읽거나)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볼 일이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무섭도록 책을 읽고 비평한 이현우 교수의 저서 [책 읽을 자유]의 서문을 보면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는다"는 살벌한 문장이 있다.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는 책 읽기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는 이도 존재한다. 당신은 후자인가? 전자인가?

 

읽지 않고, 듣지 않고 외로움을 호소하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고양이를 빌려드릴까요? 책을 빌려(읽어)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