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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

등잔 밑이 어둡더라도 살펴봐야한다

by KOCCA 2013. 1. 25.

 


이상민 (소설가, 칼럼리스트, 컨텐츠 기획자)
  

 

늘 그렇듯이 희망과 우려가 혼재하는 새해가 밝았다. 2012년은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를 치르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러다보니 일부 안타까운 소식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가슴 아픈 소식은 <주먹대장>의 아버지, 김원빈 화백의 부고였다.


<주먹대장>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유소년 종합월간지였던 『어깨동무』에 장기 연재되었던 고(故) 김원빈 화백의 대표작이다. 이후에 <주먹대장>은 1992년 만화주간지 『아이큐 점프』에 연재를 속개(續開)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려 3, 40년 전에 발표했던 작품이지만 워낙 완벽주의를 고수했던 김원빈 화백의 작품답게 <주먹대장>은 지금 다시 꺼내 봐도 전혀 낡았단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 작품이다.

 

 

 

고인의 역작인 <주먹대장>은 요사이 유행처럼 말하는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원빈 화백은 우리 전래의 설화와 전승을 깊게 탐구하여 다양한 캐릭터들을 창조했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주인공인 ‘주먹대장’이다. 큰 눈망울에 둥글둥글한 얼굴을 한 귀여운 소년이지만 엄청나게 큰 오른손 주먹으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여 악행을 일삼는 어른들을 벌하는 주먹대장이란 캐릭터에서 ‘피터팬’의 이미지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형 피터팬 만화의 원형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주먹대장>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원 소스 멀티유즈’에 적합한 가장 모범적인 ‘원작’ 중 하나이다.
 
 
잘 만든 캐릭터, 성공한 캐릭터가 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요인은 ‘스토리텔링’이다. 이미 검증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뽀통령’이라는 애칭을 얻고 있는 ‘뽀로로’는 물론이고 ‘아기공룡 둘리’ 역시 원작(둘리 역시 80년대 만화월간지였던 보물섬에 장기간 연재되었다)의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장수 캐릭터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월트 디즈니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라.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같은 캐릭터가 지금껏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만약에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에피소드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전에 잊혔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갖지 않은 캐릭터는 단순히 이미지에서 멈추고 만다. 캐릭터의 생명력은 사실상 이미지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사실, 원 소스 멀티유즈라는 게 뭔가. 캐릭터가 가진 매력의 활용을 다양화하고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밑천이 되는 ‘이야기’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웃나라 일본은 캐릭터 산업에 있어선 세계 최강국 중 하나다. 일본은 망가와 재페니이션이라는 샴쌍둥이를 기반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수의 캐릭터들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그들이 거둬들이는 수익은 천문학적인 액수다. 국내 대중문화 산업이 ‘캐릭터’의 중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한 계기는 따지고 보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심정’ 같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자꾸만 남의 것만 부러워한다. 그건 좋다. 시기와 질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모범답안을 두고도 자꾸만 다른 데서 답을 찾으려고만 한다면 그건 문제다.

 
언론에서 뽀로로의 엄청난 성공을 다루면서 캐릭터 산업의 가치가 다시금 재조명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조금 양보해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

 

 

  

 


 

서글프게도 둘리와 뽀로로를 제외하면 딱히 내세울 국가대표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진짜로 없을까, 하는 물음을 해보면 또 답은 달라진다. 우리에겐 이미 선배들이 남겨놓은 풍부한 유산이 있다.
 

고 김원빈 화백의 <주먹대장>이 있고, 한국SF만화의 효시이자 슈퍼히어로의 시작이었던 박산호 화백의 <라이파이>가 있다. 나가이 고의 마징가에 꿀리지 않는 <캉타우>가 있으며, 고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가 있고, 신문수 화백의 <로봇 찌빠>도 있다. 물론 그동안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너무 미미하고, 단편적이며 전시행정 같은 수준에서 그쳤다. 가장 흔한 방법론이 고작해야 <복간 작업>이다. 어렵게 땅속에 묻혀있는 원석을 끄집어내서는 그냥 거기서 만족하고 끝나는 것이다.


한때 우리 ‘것’이라고 오인했던 <마징가Z>를 보라. 처음 선보인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화’와 ‘애니메이션’, 피규어모델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걸 부러워만 하고 있을 것인가?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있어도 못하니까 문제다.
 

다양한 개성을 자랑하는 <주먹대장>의 캐릭터들은 마치 미국의 마블 스튜디오가 보여줬던 것처럼 그 수만큼이나 많은 스핀오프를 제작할 수 있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를 부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도 <캉타우>를 스크린에 내걸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허리우드에서 가장 뜨는 트렌드인 ‘슈퍼히어로 장르’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아이언맨>이나 <수퍼맨>을 대신할 <주먹대장>이 있고, <라이파이>도 있고, <전자인간 337>이 있다.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외국산이 아닌 우리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캐릭터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동안 찾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태만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안부터 살피자.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부터 보전하고 잘 활용해야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 아무리 어두워도 필요하면 손을 더듬어서라도 살펴봐야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선배들이 남긴 ‘유산’을 다시 어떻게 후배들에게 전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외국산 캐릭터들이 아닌 정겨운 우리 캐릭터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